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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가벼워 쭉쭉 나가는데 편의장비는 폭망? 로터스가 이렇게 달라졌다

권혁재 에디터

6단 수동 변속기에 낮고 가볍지만 편의장비도 잔뜩 있다.

빠른 성능과 극강의 운전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서 스포츠카 브랜드들은 다양한 것을 연구한다. 강력한 파워트레인을 무기로 삼는 브랜드도 있고, 뛰어난 공기 역학 기술을 강점으로 하는 제조사도 있다. 그중에서도 지독하게 하나의 분야만 미친듯이 파고 들어간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로터스다. 로터스가 집중한 것은 ‘경량화’, 즉 차를 가볍게 만드는 일이었다. 로터스의 창립자 콜린 채프먼은 “엔진 출력을 올리면 직선에서 빨라지지만, 차를 가볍게 만들면 모든 곳에서 빨라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엘리스 스포츠 220 / Lotus

로터스는 설립자의 정신을 계승해 차를 가볍게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코너링과 경량화에 도움이 안 될만한 것은 다 버렸다. 심지어 파워트레인도 컴팩트했다. 로터스의 심볼 같은 모델이자 가장 기본형 모델인 엘리스는 1.8ℓ, 1.6ℓ 등 작은 배기량의 엔진에 슈퍼 차저를 결합한 파워트레인을 사용했다. 2세대 모델까지는 ABS외에는 변변한 안전장치도 없었고 파워 스티어링 휠도 적용되지 않았다. 차체는 섬유강화 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졌고 차에 타기 위해서는 몸을 한껏 구겨서 타야 했다. 오디오나 에어컨은 옵션 사양이었으며 인테리어에서도 철판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극악으로 무게를 줄여 엘리스는 3세대 모델이 단종될 때까지 단 한번도 1톤을 넘은 적이 없었다.(기본형 모델 기준)

이것이 로터스의 매력이자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성능을 위해 편의 기능을 모두 포기한 극단적인 하드코어 모델이었다. 물론 상위급에는 GT 성향을 가지고 있고 비교적 편의 사양도 풍부하게 들어간 에보라 같은 모델도 있었지만 그 차 역시 GT치고는 작고 컴팩트했으며 가벼웠다. 마니아들에게는 아이코닉의 극치였지만 일반인들까지 포용하기에는 진입 문턱이 너무 높았다. 로터스는 이미 국내에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이런 문제로 인해 결국 철수하게 됐다. 이는 비단 국내의 문제 뿐만은 아니어서 로터스는 여러 회사를 전전하는 신세를 겪어야만 했다. 최종적으로는 말레이시아의 자동차 제조사 프로톤에 인수되었다가, 프로톤이 중국 지리자동차에 인수되며 지리자동차 소속이 되었다. 볼보의 모회사인 바로 그 회사다. 그리고 로터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로터스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 / 권혁재PD

코오롱 모빌리티그룹이 로터스 브랜드를 공식 수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한번 국내에서 로터스를 만날 수 있게 됐다. 9월 말 개장을 목표로 강남 전시장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잠실에 위치한 시그니엘 서울 1층에서 팝업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된 모델은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 모델이다. 기존의 엘리스와 엘리스의 고성능 모델 엑시지, GT모델 에보라 라인업을 통합한 모델로 두 가지 파워트레인으로 출시한다. 메르세데스 AMG의 싱글 터보 직렬 4기통 2.0ℓ 엔진과 8단 DCT를 결합해 최고 출력 360마력, 최대 토크 43.9kg.m를 뿜어내는 모델과 토요타의 V6 3.5ℓ 엔진에 슈퍼차저를 결합하고 6단 수동 변속기, 혹은 6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려 최고 출력 400마력, 최대 토크 42.8kg.m를 발휘하는 모델이 있다. 두 모델 다 미드십 구조와 후륜 구동을 채택한다.

뒷 유리창을 통해 운전석 등 뒤의 V6 3.5ℓ 엔진을 확인할 수 있다 / 권혁재PD

이중 국내에 가장 먼저 선보일 모델은 V6 3.5ℓ의 퍼스트 에디션 모델로 시그니엘 팝업 전시장에 세워진 차량이다. 가격은 수동 변속기 기준 1억 4200만 원, 자동 변속기는 1억 465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퍼스트 에디션은 국내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만큼 다양한 편의 사양과 실내 소재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풀옵션 사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근에는 직렬 4기통 모델의 퍼스트 에디션도 사전 계약을 시작했는데, 북미 기준으로 V6 사양보다 5500달러가 저렴하기에 약 1억 3천만 원대 중후반에서 가격이 책정되지 않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로터스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 / 권혁재PD

일단 한 눈에 봐도 낮은 차체가 눈에 띈다. 전고가 1225mm로 차량 옆에 나란히 섰을 때 가슴 위치보다 낮은 곳에 천장이 있다. 위 아래로 길게 늘어진 LED 헤드램프에는 무려 ‘EMIRA’로고가 프로젝션에 새겨져 있다. 코너링과 경량화 외에는 일절 멋부리기를 하지 않았던 과거의 로터스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범퍼 하단에 자리 잡은 에어인테이크로 들어온 공기는 보닛에 X자 형태로 개방되어 있는 바람길을 통해서 나간다. 일부러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다운 포스를 형성해 그립을 살리고 주행 안정감을 높이는 것이다. 다만 그로 인해 이 차량의 전면부에는 트렁크가 없다. 일반적인 미드십 구조의 슈퍼카들이 최대한 전면부 수납 공간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왠지 로터스 다운 방식인 것 같아 웃음이 난다. 타이어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컵2를 사용하고 있다. 전륜은 245/35/20 사이즈를 쓰고 있으나 모든 출력을 감당해야 하는 후륜은 295/30/20 사이즈를 쓰고 있다. 미드십 구조이기 때문에 도어 바로 뒤편에는 흡기를 위한 커다란 에어인테이크가 자리 잡고 있다.

로터스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 상시 전원을 위해 별도의 배터리를 장착중이다. / 권혁재PD

후면부는 전반적으로 볼륨감을 강조했다. 트렁크 리드에 맞춰서 만들어진 작은 테일램프는 중앙 부분이 안 쪽으로 쏙 들어가 있다. 그 아래로는 후륜 휠하우스에서 생긴 와류가 빠져나갈 수 있게 실제로 구멍이 나있으며 그 아래에는 주먹보다 더 큰 머플러팁이 양쪽으로 2개 자리잡고 있다. 디퓨저는 차량 안쪽부터 핀이 세워져 있어 실제로 공기 역학을 위해 설계된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차의 유일한 트렁크를 여는 문은 뒷 유리창까지 같이 열리는 해치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매번 트렁크를 열 때마다 엔진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다. 매우 흐뭇한 광경이지만 요즘 같이 푹푹 찌는 여름에는 짐을 꺼낼 때 마다 뜨거운 열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로터스 에미라의 트렁크 공간, 먼지털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정말 작다 / 권혁재PD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공기 역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면서도 기존 로터스 모델들의 일부 투박했던 모습들을 훨씬 세련되게 다듬었다. 과거 로터스는 엘리스, 엑시지, 에보라 모든 모델이 원형의 조그마한 테일램프를 사용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거기에다가 낮은 차체와 미드십 구조의 아름다운 비율, 에어인테이크를 중심으로 크게 잡은 주름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뒷 펜더의 디자인은 이 차 보다 훨씬 비싼 페라리, 맥라렌의 일부 모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이 차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고 강조하는 것 중 하나에 가격을 초월한 디자인이 한 몫 하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로터스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의 인테리어 / 권혁재PD

인테리어는 이 차가 진짜 로터스인가 의심을 하게 만든다. 과거 엘리스를 생각해보면 경량화를 위해 대시보드 상단에만 내장재를 살짝 두르고 나머지는 철판을 고스란히 노출했었다. 하지만 에미라에는 정말 많은 가죽 내장재가 사용됐다. 도어 패널은 하단 수납 공간 정도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고 그나마 수납 공간 안에는 소음을 방지할 수 있게 직물 소재를 덧대었다. 천장재는 알칸타라로 만들어졌고 대시보드도 상단부는 모두 가죽이다. 시트도 전동 시트가 적용되었으며 무려 메모리 기능까지 적용되어 있다. 글로브 박스, 두 개의 컵홀더, 센터 콘솔까지 갖추고 있어 과거 로터스에게는 사치였을 품목들이 빠지지 않고 적용되어 있다. 전자식 계기판과 10.25인치 센터 디스플레이과 적용되었으며 무선 앱 커넥트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 차는 더 이상 오로지 운전의 재미와 효율성만을 위한 하드코어한 로터스가 아니다. 그런 성향으로는 대중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결과를 뼈저리게 느낀 로터스는 점점 친절한 차가 되고 있다.

로터스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의 시트 / 권혁재PD

물론 과거의 로터스 팬이라면 아쉬울 수 있다. 차에 오르기 위해서는 탑승자가 몸을 구겨가며 타야했던 불친절한 로터스에 매료 당한 마조히스트 성향의 마니아들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차에 앉는 순간 ‘아 그래도 로터스는 로터스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극적으로 낮은 지상고와 시트 포지션으로 엉덩이를 한참 내려도 시트에 닿지 않는다. 차에 앉고 나서 팔을 뻗으면 아스팔트와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다. 과거 엘리스를 탈 때 처럼 몸을 욱여 넣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달리기에 최적화된 시트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동화와 자율 주행에 발 맞춰 ‘시프트 바이 와이어’가 필수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시대에 무려 6단 수동 변속기를 내놓았다. 꿈인가 생시인가 발 밑을 내려다보면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넘어 클러치까지 3개의 페달이 자리 잡고 있다. 기어노브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기어박스의 기계 장치들이 노출되어 있는 낭만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로터스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 수동 변속기의 기어 박스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 권혁재PD

과거의 로터스와 견주어 보면 이 차에는 빼다 버려야 할 것들이 넘쳐난다. 아마 콜린 채프먼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차는 이런 편의 장비를 가득 담으면서도 1405kg이라는 공차 중량을 만들어냈다. 이는 에보라 대비 10kg 밖에 안 무거워진 것이며 경쟁 모델 대비해서도 훨씬 가벼운 무게다. 이를 위해 로터스는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의 터브를 만들었다. 정확한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도어를 개폐했을 때 드러나는 안쪽 패널을 두들기자 스틸이 아닌 플라스틱을 두들길 때의 소리가 들렸다. 과거의 전통을 이어 부분적으로 FRP 소재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전륜과 후륜 모두 단조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장착해 코너링 성능을 향상 시켰다고 한다. 애초에 차량을 구매할 때 ‘스포츠’와 ‘투어링’ 중 하나의 섀시 형태를 고를 수 있게 선택권을 준다고 한다. 로터스의 전력을 봤을 때 스포츠 섀시는 엄청나게 하드코어한 물건일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경량화와 코너링에 대한 로터스의 정신은 아직까지 유효하게 진행되고 있다.

로터스 에미라 V6 3.5 퍼스트 에디션 / 권혁재PD

에미라는 아쉽게도 로터스의 마지막 내연기관 모델이다. 이후 출시되는 모델은 모두 하이브리드나 순수 전기차와 같은 전동화 모델로 나온다고 하며 에미라에 이어 전기 SUV인 엘레트레 역시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배터리가 들어가는 순간 이미 경량화에서는 멀어지는 것이기에 에미라야 말로 마지막으로 접할 수 있는 순수한 로터스의 정신이 깃든 차량이 될 것이다. 특히 6단 수동 변속기 모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에미라는 직렬 4기통 모델과 V6 모델 모두 사전 계약을 진행중이며, 이르면 올해 4분기 V6모델을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출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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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에디터
mobomtaxi@carandm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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