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대 맞이한 골프와 GTI, 다음 세대부터는 전기차로 바뀐다
핫해치 장르를 한국에 알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자동차다. 많은 욕을 먹었던 3세대 i30의 ‘핫해치지’ 광고를 기억한다면 말이다. 욕은 먹었지만 그로 인해 본의 아닌 바이럴도 됐고, 3세대 i30를 베이스로 본격적인 스포츠 디비전 N이 시작됐으니 i30가 핫해치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핫해치. 아쉽게도 해치백의 무덤인 한국에선 꿈꾸기 어려운 장르다. 이와 다르게 유럽에서는 해치백이 소형차의 대명사로 많은 대중에게 선택을 받고 있다. 그런 컴팩트한 차체에 고성능을 욱여 넣은 핫해치는 유럽을 상징하는 자동차가 됐다.
그중에서도 폭스바겐 골프 GTI는 핫해치의 시조새 격인 모델이다. 1976년 1세대 골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GTI가 첫 선을 보였고 그 명맥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GTI보다 이르게 출시한 핫해치 모델들은 있었으나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은 골프 GTI가 유일하다. 하지만 모두가 전기차로 이동하는 격변의 시기마저 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폭스바겐은 8세대 모델을 마지막으로 내연기관의 골프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년에 마이너 체인지가 예정돼 있지만 어디까지나 부분 변경에 불과하다. 내연기관 플랫폼으로 만들어지는 골프 GTI는 지금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8세대 모델이 마지막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골프’와 ‘GTI’라는 이름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물론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내연기관이라는 것 때문에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어 보닛을 열어보면 허전함이 더 해진다. 엔진 커버가 없기 때문이다. GTI는 고객 인도가 되기 전 리콜 명령부터 받았는데, 엔진 커버의 특정 부분 고정력이 약해서 헐거워질 수 있고 이로 인해 녹아내린 부품이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현재 GTI에는 엔진 커버가 없이 판매가 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성능 모델이라서 NVH에 대한 소비자의 민감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행 중에는 제법 많은 엔진 소리와 배기음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조용한 차는 아니지만 그 맛으로 타는 것이기에 엔진 커버의 부재로 시승 동안 불편한 점은 느낄 수 없었다.
GTI에 들어간 파워트레인은 4기통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에 7단 듀얼 클러치 미션을 결합했다. 이로 인해 245마력의 최고 출력이 5000~6500RPM 사이에서 나오고 1600~4300RPM 사이에서는 37.8kg.m의 최대 토크가 발휘된다. 복합 연비도 11.5km/ℓ로 우리가 생각하던 핫해치 치고는 제법 준수한 편이다. 실제로 도로에서 일상적인 주행을 할 때에는 낮은 회전수에서도 발휘되는 풍부한 토크로 인해 힘이 부족하지 않다. 얌전하게 주행하면 변속도 2000RPM 아래에서 해결된다.
터보의 도움으로 토크는 높지만 그것만으로 뭔가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요즘에는 많은 차량들이 과급기를 써서 토크를 높이기 때문에 GTI라는 모델에 기대했던 ‘재미’는 안 느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파워트레인을 스포츠 모드로 설정하고 패들 시프트를 이용하여 RPM을 높게 써보자. 최초로 상용화 된 듀얼 클러치 변속기, 폭스바겐의 DSG미션은 빠릿하게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변속을 해준다. 과거의 울컥거리던 DSG를 회상한다면 이제는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다. 변속 속도는 여전히 빠르지만 체결감이 토크 컨버터 방식의 오토 미션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다. 과거의 DSG는 수동 미션을 이해하고 운전의 재미를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변속기의 감각이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변속기가 됐다. RPM을 높여 최고 출력이 발휘되는 5000~6000 RPM 언저리로 가면 그때부터 엔진을 마구 쥐어 짜내는 느낌이 든다. 가속 페달 개폐에 대한 응답력도 최대로 민감해지고 보닛에서 들려오는 엔진 소리는 아드레날린을 마구 내뿜게 만든다. 이제서야 GTI를 제대로 활용하는 기분이다.
3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내는 골프의 가장 고성능 모델 R은 4륜구동을 채택했지만 GTI는 기본형 골프와 마찬가지로 전륜 구동을 채택했다. 여기에 운전의 재미를 더욱 살리기 위해서 VAQ라고 하는 전륜 디퍼렌셜 시스템과 DCC라고 불리는 전자식 댐퍼가 포함된 섀시 콘트롤 시스템을 갖췄다. DCC는 운전자의 개별 설정에 맞춰서 전자식 댐퍼와 브레이킹, 핸들링 등을 컴포트와 스포츠 사이 15단계로 제어한다. 이 간극이 매우 커서 마치 다중 인격자를 만나는 듯 하다. 우선 DCC를 가장 컴포트하게 설정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타고 다니는 준중형차, 소형차의 승차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대중적인 소형차인데 살짝 스포티함을 가미한 정도의 느낌이다. 과속 방지턱 등을 넘을 때에도 정말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이 세팅일 때에도 스티어링 휠을 통한 핸들링 직결성은 쫀쫀하게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DCC를 가장 스포티한 세팅으로 선택하면 차의 거동이 180도 달라진다. 컴포트 모드일 때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지나갔던 노면에서도 위아래로 흔들린다. 승차감이 통통 튈 정도다. 마치 일체형 서스펜션을 장착한 튜닝카에서 만나본 듯한 승차감이다. 이 세팅을 선택한 채로 20km가 넘는 거리를 출근한 적이 있는데 등이 쪼개질 것 같았다. 단단해진만큼 롤링과 피칭 같은 불필요한 움직임도 사라진다.
VAQ시스템 역시 제 역할을 잘 해낸다. 와인딩에서 살짝 과진입했다고 생각해도 놀라우리만큼 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들여놓는다. 여기에는 컴팩트한 차체도 한 몫 한다. 국내 경쟁 모델인 아반떼N보다 휠베이스가 무려 84mm나 짧다. 전륜구동의 숙명인 언더스티어의 억제 능력이 정말 뛰어나서 흡사 후륜구동과 4륜구동을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VAQ시스템과 DCC, 거기에 발 빠른 7단 DSG와 고회전 구간에서 쫀쫀한 맛을 내는 엔진이 어우러져 상당한 운전 재미를 선사한다. 과한 퍼포먼스를 내는 것이 아닌 뉴트럴한 성향의 정직하고 믿음직한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운전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재미있다. 이 차의 별명이 왜 ‘서민들의 포르쉐’인지 타보면 알 수 있다.
다만 스포츠 드라이빙을 위해 만들어진 차량 치고는 대시보드에 너무 많은 버튼들이 터치 패널로 되어 있는 것은 감점 요인이다. 우선 스티어링 휠에 배치된 버튼들은 두 손 바쁘게 와인딩을 주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손 쉽게 터치가 되어 음악이 갑자기 나온다거나 스티어링 휠 열선을 누르게 만든다. 공조의 온도 조절도 터치 패드 형태가 들어갔고 드라이브 모드 버튼마저도 터치로 마련했다. 스포츠 드라이빙일 때는 물론 일상적인 주행 중일 때도 옆에 있는 다른 버튼을 누르는 오입력이 잦다. 마이너 체인지 스파이샷에서 테슬라와 같이 상당히 큰 센터 디스플레이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단점들을 명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던 성능적인 부분 외에 생각보다 풍성한 편의 장비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유럽산 소형 해치백과 고성능 모델의 조합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옵션을 크게 기대할 수 없던 조합이었다. 하지만 현재 골프 GTI에는 아반떼N에도 없는 HUD가 들어가 있다. 세미 버킷 시트에는 열선은 물론 통풍 시트까지 적용돼 있으며 폭스바겐의 한국형 네비게이션도 탑재돼 있다. 하지만 무선 앱 커넥트를 활용해 안드로이드 오토나 애플 카플레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큼지막한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 역시 장착되어 있다. 전자식 파킹브레이크 적용으로 오토홀드는 물론 다양한 ADAS가 적용됐으며 주차 보조 시스템까지 장착돼 있다. 특히 어댑티브 크루즈 콘트롤과 차선 중앙 유지 장치를 통한 주행 보조는 깔끔하고 믿음직한 실력을 보여준다.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앰비언트 라이트와 선루프도 장착돼 있다.
폭스바겐이 자랑하는 IQ.라이트도 들어가 있다. 주변 광 상태를 확인해 자동적으로 상향등을 켜주는 것은 물론 방향지시등을 넣거나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해당 방향으로도 빛을 비춰줘 운전이 한결 안전하고 편안해진다.
아반떼에 비해서도 휠베이스가 84mm나 작기에 2열 공간은 다소 좁다. 못 앉을 정도는 아니지만 레그룸과 헤드룸 등이 타이트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1열의 헤드레스트 일체형 시트로 시야가 확 막혀서 더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2열 역시 C타입 USB단자와 별도의 공조 장치, 에어 벤트까지 마련해 두었다.
트렁크 공간은 사진과 같이 장우산을 대각선으로 두었을 때 조금 남을 정도의 공간이다. 휠 하우스 뒷편으로 조그마한 짐들을 수납할 수 있는 자투리 공간을 살렸다. 트렁크 바닥을 들쳐보면 타이어 리페어 키트가 아닌 템포러리 타이어가 들어가 있다. 물론 구석 구석 활용한다면 추가적인 수납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템포러리 타이어와 짐을 같이 넣어두기가 마땅치 않다. 대신 해치백의 주특기인 2열 시트 폴딩을 활용한다면 세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납 공간을 가지게 된다. 스키 쓰루 기능까지 마련해서 약간의 긴 짐은 폴딩 없이도 적재가 가능하다.
최근 폭스바겐 코리아에서 23년 형 골프 GTI를 출시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센터 사이드 에어백이 새롭게 추가되었고, 기어 노브 주변의 블랙 하이그로시 장식, 새롭게 바뀐 폭스바겐 로고의 스티어링 휠, GTI로고가 박힌 세미 버킷 시트, X자형 안개등이 추가됐다. 가격은 22년 형 모델 대비 약 300만 원 정도 인상 된 4790만 원으로 책정됐다. 작년 연말에 본격적으로 고객 인도가 시작된 이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진행된 가격 인상이다. 길거리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기에 무슨 생각으로 가격을 올렸을까 검색해봤더니 생각보다 대기 고객이 많다. 최소한 4개월 정도 대기해야 받을 수 있으며 이 역시 인도 기간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골프GTI가 잠시 한국을 비운 동안 현대 N이라는 걸출한 경쟁 상대가 생겨서 다소 힘에 부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동호회 반응을 보니 수년째 이전 세대의 GTI를 보유하던 오너가 또 다시 GTI를 찾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GTI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본 글귀 중 하나가 ‘포르쉐 911과 골프 GTI는 시승 없이 바로 구매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차’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시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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