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판매량에서 역대 최저 실적을 보인 K8… 단순한 헤프닝일까?
4천만 원대 자동차 시장에 전쟁이 발발했다. 지난 해 11월 출시 이후 항상 판매량 세 손가락 안에 들고 있으며 거의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랜저. 지난 달 5세대로 돌아온 한국 SUV의 대표 모델, 신형 싼타페와 그에 대적해 부분 변경을 진행한 쏘렌토가 그 주인공이다. 세단과 SUV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모두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사이에 포진한 가격대, 그리고 패밀리카와 비지니스 용도로 두루 쓰기에 알맞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흐름에 비교적 관심을 못 받은 차량이 한 대 있다.
기아의 준대형 세단 K8이다. 지난 2021년 출시 이후 K8은 항상 국산차 판매량 순위 10위권 안에 들던 잘 나가는 차였다. 지난 해 막강한 라이벌이자 30년 넘게 이어 온 헤리티지까지 갖춘 그랜저의 출시와 함께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그래도 판매량 10위 권 안팎에는 있던 차다. 하지만 지난 달은 달랐다. 2457대가 판매되며 K8 출시 이후 최초로 2천 대까지 판매량이 떨어졌고 판매 순위는 동생인 K5보다 낮았다. 중형 세단 시장이 죽으며 준대형 세단이 훨씬 많이 팔리는 현재 자동차 시장 상황을 보면 뼈 아픈 상황이다.
물론 한 달간 판매량이 저조했던 것으로 흥망성쇠를 판단할 수는 없다. 8월은 여름 휴가철이었기에 K8의 생산 라인이 멈췄을 수도 있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할 수 있기에 판매량 추이를 잘 살펴봐야 한다.
지난 6월부터 판매량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월 말 종료된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 조치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7월 판매량은 6월 대비 1천 대 가까이 줄었지만 국산차 중 판매 순위는 11위였다. 자동차 판매량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어쨋든 전쟁은 발발했다. 그랜저와 쏘렌토, 싼타페 사이에서 K8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이 무엇일지 살펴보기로 했다. 시승 차량은 V6 3.5ℓ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AWD모델이다. K8의 파워트레인 중 가장 높은 사양을 시승하게 됐다.
출시한 지 3년차가 되는 모델이지만 디자인은 지금 봐도 감각적이고 새롭다. 물론 그릴을 별도의 파팅 라인없이 차체 색상과 동일하게 처리한 디자인으로 호불호를 가지고 있는 생김새지만 에디터는 국산 세단 중 가장 잘 생긴 차를 꼽으라고 하면 K8을 꼽을 정도로 파격과 중후함을 모두 잡은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테일 램프와 뒷 범퍼가 만나는 구간에 큰 음각 형태의 디자인을 둬 브레이크 등이 들어올 때 범퍼에도 빛이 반사되는 아이디어 역시 매우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긴 차체와 더불어 측면 하부에 있는 크롬 몰딩으로 인해 전체적인 프로포션이 상당히 낮게 느껴진다. 천장에서 트렁크 리드로 이어지는 C필러의 각도 역시 일반적인 준대형 세단과는 다르게 유려하게 떨어지는 쿠페, 혹은 패스트백 형태의 디자인을 취하고 있다. 그랜저의 정직한 3박스 형태와 비교된다.
인테리어 디자인 역시 그랜저와 확연히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그랜저가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 송풍구 등을 수평으로 넓게 배치해서 넓은 공간감을 살리고 단순한 디자인을 채택한 것과 다르게 K8은 곡선을 많이 사용했다.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 역시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적용, 둥글게 말려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의 마치 욕조처럼 둥그렇게 말려있어서 별개의 부품이 아닌 하나의 공간처럼 이어져있다.
대시보드의 우드트림 위로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배치한 형태의 디자인을 적용해 센터페시아 부분과 동승석 앞의 우드 트림 공간감도 확연한 차이가 발생한다. 도어트림에 위치한 스피커 패널은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과 같이 디자인했다. 이곳저곳에 다이아몬드 패턴을 활용하면서 K8은 그랜저와 달리 무난하지 않은 디자인을 적용했으며, 공간감을 적극적으로 살려내면서 그저 넓기보다는 포근하면서 안락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랜저와 상반된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기에 이 역시 소비자가 선택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K8의 인테리어에는 몇 가지 단점이 보였다. 우선 그랜저가 칼럼식 기어 노브를 선택한 것과 달리 K8은 다이얼식 기어 노브를 사용하면서 센터 콘솔의 공간 활용도가 떨어지게 됐다. 그랜저는 센터 콘솔 공간을 온전히 수납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키 176cm인 에디터가 운전석에 앉았을 때 HUD의 윗부분이 잘려보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참고로 HUD는 현대차그룹의 내장형 블랙박스인 빌트인캠1과 함께 묶여 163만 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옵션이다. HUD의 상을 가장 아래로 낮췄을 때도 화각이 나오지 않은 것을 봤을 때 애초에 HUD의 상을 보내주고 있는 대시보드의 구멍이 너무 작게 설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K8에는 다양한 파워트레인이 적용되어 있다. 1.6ℓ 터보 하이브리드와 4기통 2.5ℓ 가솔린, 3.5ℓ LPG엔진과 3.5ℓ 가솔린 총 4가지 종류인데 이중 주력은 연료 효율이 좋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다. 아무래도 시승차량인 V6 3.5ℓ 가솔린 파워트레인은 낮은 연비와 더불어 높은 자동차세로 인해 판매량이 높은 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6기통 특유의 정숙성과 고급스러운 주행 질감으로 임원급 인사의 법인 차량 등의 수요가 있는 모델이다. 최고 출력은 300마력, 최대 토크는 36.6kg.m이며 8단 자동변속기와 매칭되어 있다.
이그니션 상태에서 NVH는 그야말로 정숙의 끝을 보여준다. 실내에 앉아있을 때에 파워트레인의 소음과 진동 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RPM의 1천RPM 중후반대까지 올라가면서 다소 높은 엔진음을 내지만 어느 정도 속도에 다다르면 다시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최근 배기량을 다운사이징한 모델들이 많이 출시되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4기통 엔진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6기통만의 감성이 돋보인다.
다만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을 때 배기량과 출력 대비 화끈한 가속 능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최고 출력이 발휘되는 회전수가 6400RPM, 최대 토크가 발휘되는 회전수가 5000RPM으로 다소 높은 편이다. 8단 자동변속기는 시의적절하게 변속을 빠릿하게 잘 해주고 있지만 높은 출력이 발현되는 회전대가 높다보니 낮은 회전 영역에서는 빠릿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넉넉한 힘으로 밀어주는 느낌을 보여준다. K8의 타겟층에는 오히려 더 적합한 파워트레인 세팅이라고 볼 수 있겠다.
4륜구동 시스템은 출력이 넉넉한 3.5ℓ 가솔린 파워트레인에서만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최상위 트림인 플래티넘을 선택하면 기본으로 적용된다. K8에 들어간 4륜구동 시스템 역시 스포츠성하고는 거리가 있다. 전륜을 기반으로 상황에 따라 전륜과 후륜에 구동을 배분하지만 후륜으로 더 많은 구동을 배분해주는 일은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후륜으로 약간의 구동을 보내주는 정도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전륜구동은 전진할 경우 앞이 들리면서 접지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기에 이를 보완해주는 정도다. 급가속을 하면 그만큼 후륜에 더 많은 구동을 배분해준다. 악천후로 인해 접지력 확보가 쉽지 않은 경우에는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시승차에는 선택 사양인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탑재되어 있다. 주행 환경이나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서스펜션이 감쇄력을 조절하는 것이다. 준대형 세단 중에서는 K8에 최초로 적용됐고 이후 나온 그랜저에는 전방 카메라가 노면을 확인해 서스펜션의 감쇄력을 조절해주는 프리뷰 전자제서 서스펜션이 탑재됐다.
기본적으로 준대형 세단 세그먼트인만큼 K8은 부드러운 승차감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그랜저와 비교하면 약간의 탄탄함을 더했다. 휠베이스가 길고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채택하면 과속방지턱을 넘거나 고속에서 범핑을 만났을 때 차체가 위아래로 출렁이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K8은 이를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한 세팅이다. 드라이브 모드를 가장 기본인 Normal로 설정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주 큰 과속방지턱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무른 후륜 서스펜션이 한 번 정도는 출렁이는 경우도 있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설정하면 이런 출렁거림도 막기 위해 한층 더 탄탄한 승차감을 선보인다. 노면이 매우 좋지 않은 도로에서는 Normal모드일 때는 부드러운 세팅과 단단한 세팅 사이에서 서스펜션이 혼란을 느끼는 경우를 종종 겪었다. 큰 포트홀을 밟았을 때는 서스펜션이 끝까지 수축된 것과 같은 ‘쿵’하는 충격을 느끼기도 했다. 반면 계속 긴장하고 있는 스포츠 모드일 때는 이런 느낌을 얻지 못 했다. 그래서 노면이 좋은 곳을 오랫동안 주행하는 간선도로, 고속도로, 혹은 도로 환경이 깔끔한 시내 등에서는 드라이브 모드를 Normal, 포장 환경이 안 좋은 곳에서는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스포츠 모드로 선택한다고 해서 마치 고성능 차와 같은 아주 단단한 승차감을 만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의 준대형 세단 승차감에 약간의 탄탄함을 더 해주는 정도이다.
시승차에는 고속도로 주행보조2(HDA2)가 적용되어 있었다. 간선도로에서 딱 한 번 차선 중앙 유지 장치가 실수를 한 적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항상 기민하게 잘 작동했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의 가감속 능력도 좋았다. 방향지시등 점등 시 차선을 변경해주는 기능 역시 문제 없이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랜저와 싼타페에 적용된 정전식 스티어링 휠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쉽다. 차선 중앙 유지 장치를 사용할 때 그랜저와 싼타페는 스티어링 휠에 손만 올라가 있으면 되지만 K8은 토크 감응형이 적용되어 있어 타각을 주지 않는 경우 중간중간 스티어링 휠에 손을 올리고 있으라는 경고가 뜬다. 이는 차후 연식 변경이나 부분 변경 때 기다려봐야 할 듯 하다.
K8의 상품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민망한 것이 21년 4월에 출시해 이제 막 3년 차를 맞이한 현역이다. 물론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시대로 대격변하는 시기에 자동차 관련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속도가 빠르다. 특히 ADAS와 각종 센서를 활용한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불과 1년 7개월 뒤에 출시한 그랜저에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들어가고 정전식 스티어링 휠이 들어간 것을 보면 먼저 태어난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K8은 그만큼 저렴하다. 시승차와 같은 스펙으로 그랜저의 가격을 산출해보니 약 350~400만 원의 격차가 벌어진다. 수긍할만한 가격 차이다. 동일한 3세대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파워트레인도 완벽하게 동일하다. 결국 시장의 라이벌인 그랜저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인과 패키징, 그리고 승차감 세팅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이 부분은 그랜저와 K8이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기에 선택하기가 쉬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의미에서 K8의 8월 판매량은 단순한 헤프닝에 그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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