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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맞은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해결 방법 제시할까? 영화 <밤낚시>

권혁재 에디터

현대자동차와 손석구가 제작한 영화 <밤낚시> 14일 개봉
런닝 타임 13분, 영화 티켓은 천 원…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할까

한국 영화계가 어렵다. 지난해 개봉한 <서울의 봄>, 올 4월 개봉한 <범죄도시4>와 같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도 있지만 그 외의 다른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다중 운집이 금지되기 전까지 극장 관람객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16년 약 2억 1702만에 다다르던 누적 관객 수는 2019년 2억 2667만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후 코로나의 영향력이 아예 사라졌던 지난해의 누적 관객 수는 절반에 가까운 1억 2513만에 그쳤다.

영화 <밤낚시>의 포스터. / 현대자동차

코로나 시대에 맞춰 OTT 시장이 급성장했고 사람들은 이제 영화관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한다. 그리고 크게 오른 영화 관람 가격 역시 극장을 멀리하게 된 요인이다. 이런 환경에서 상당히 독특한 영화가 한 편 개봉한다.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단편 영화 <밤낚시>다. 영화의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인 손석구가 ‘스낵 무비’라고 일컫고 그에 걸맞게 영화 티켓 역시 천 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현대자동차의 초청으로 미디어 시사회에 참석해서 영화를 보게 됐다.

<밤낚시>는 2013년 <세이프>라는 영화를 통해 칸 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 감독이 연출을 맡은 스릴러 장르의 단편 영화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의 시선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영화로 실제 카메라 앵글은 자동차의 카메라 위치에 고정되어 있다. 전자식 사이드미러의 카메라, 빌트인 캠(블랙박스)을 위한 전·후면의 카메라, 전면 하단 카메라와 대시캠 등이 이 영화의 유일한 시각이다. 즉, 모든 사건은 자동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발생한다.

<밤낚시>의 연출을 맡은 문병곤 감독(왼쪽)과 영화의 제작과 주연을 맡은 손석구 배우(오른쪽). / 권혁재 PD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만큼 제품을 홍보하는 요소들이 넘쳐날 것 같지만 그런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자동차의 시각으로 제작된 만큼 영화에서 아이오닉5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단 한 컷도 노출되지 않는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PPL을 하면서 꺼린다는 차량이 파손되는 장면까지 나온다. 손석구는 “영화를 찍으며 아이오닉5 한 대를 거의 다 부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밤낚시>에서 아이오닉5는 단순히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이자 ‘화자’의 역할로만 소모된다.

이에 대해 미디어 시사회에 참석한 지성원 현대자동차 브랜드마케팅본부장(전무)은 “멋진 자동차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면 멋진 제품 광고를 찍었을 것”이라며 “마케팅으로 고객과 다른 방식의 포맷으로 소통하기를 원했다. 그 매개체로 영화를 선택했고, 영화의 본질인 스토리 몰입이 더 중요했다. 지금은 브랜드가 소리 높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는 시대이기에 이런 접근 방식에 대해서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지성원 현대자동차 브랜드마케팅본부장(전무)이 <밤낚시> 미디어 시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혁재PD

이어 “앞으로 현대자동차가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가 고객을 찾아다녀야 하는 시기이기에 영화, 음악, 스포츠, 아트 쪽에서 콘텐츠 마케팅을 더 활발하게 하게 될 것”이라며 현대자동차의 마케팅 콘텐츠의 미래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제작을 맡은 손석구도 “현대자동차에서 먼저 ‘자동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콘텐츠’에 대해 제안했을 때 단순히 배우로서가 아닌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경험하고 싶다”며 역으로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창작자의 권한을 요구했는데 현대차에서 민망할 정도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하라며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기획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밤낚시>의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인 손석구가 미디어 시사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권혁재PD

<밤낚시>는 기획과 제작, 배급 모두가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는 독특한 시도다. 매력적인 시나리오에 투자자가 붙고 제작진이 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라면 <밤낚시>는 브랜드의 제품, ‘아이오닉5의 시선’이라는 큰 뼈대에 맞춰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단편 영화는 인디 상영관을 제외한 극장에 배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업성이 부족하기에 예산을 투입해 인지도가 높은 배우를 기용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밤낚시>는 브랜드가 나서서 만든 마케팅 영화이기에 다른 단편 영화와 비교해서는 제작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사회에서 정확한 제작비의 규모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제작자인 손석구가 “일반적인 상업 영화 대비 1/10이나 될까요?”라고 흘려 말했는데, 상업 영화 예산의 10%도 국내 단편 영화 시장을 생각했을 때 매우 큰 제작비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가 최근 충무로와 OTT를 비롯한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 손석구다.

영화 <밤낚시>의 예고 영상 갈무리. / 현대자동차

배우의 위력이 큰 만큼 단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멀티플렉스인 CGV에서 개봉할 수 있게 됐다. <밤낚시>는 14일(금) 개봉해 15일(토), 16일(일), 21일(금), 22일(토), 23일(일) 6일 동안 용산, 강남, 여의도, 부산 센텀시티 등 전국 주요 15개 CGV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중 14일과 22일 2회에 걸쳐 손석구 배우가 무대 인사와 함께 GV를 하게 된다.

관건은 새로운 형태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다. 일반적인 문화 소비자라면 단편 영화를 시청한 경험이 거의 전무할 것인데 이들이 거부감 없이 이런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13분이라는 짧은 런닝 타임과 1천 원이라는 저렴한 영화 관람료를 생각해 보면 승산은 있어 보인다.

영화 <밤낚시> 미디어 시사회 현장. / 현대자동차

극장에 찾아가 90분이 넘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를 봤을 때 소요되는 시간은 예상보다 길다. 티켓팅을 하고 극장에 들어가 10분이 넘는 광고를 보고 영화를 끝까지 다 시청하고 나오면 2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13분은 약속 시간이 잠깐 붕 떴을 때, 원래 보려던 영화의 상영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을 때 활용하기에 나쁘지 않다. 소비자가 느꼈을 때 부담스럽지 않다.

삼각김밥도 1천 원이 넘어가는 시대에 관람료가 1천 원밖에 안 한다는 사실 역시 중요한 점이다. 막말로 영화가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지 않다. 또한 부쩍 높아진 영화 관람료에 대한 여론을 생각해 본다면 분명 매력적인 가격이다. 제작자인 손석구는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과 가격을 ‘시성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 <밤낚시> 스틸 컷. / 현대자동차

어려운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방향성을 제시한 곳은 놀랍게도 영화 제작사가 아닌 현대자동차다. 이것만으로도 현대자동차가 밝혔던 새로운 포맷의 마케팅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이런 변주가 앞으로 한국 영화 산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다 줄 것인지, 아니면 일회성으로 끝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작자와 제작자 모두가 만족을 표현한 제법 흥미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눈 앞에 펼쳐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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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에디터
mobomtaxi@carandm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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