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BMW, GM, 혼다, 메르세데스 벤츠, 스텔란티스와 뭉친 이유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BMW, GM, 혼다, 메르세데스 벤츠, 스텔란티스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와 합작 투자 회사를 만들어 북미 시장에 3만 개의 고성능 충전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여러 언론이 현대차가 드디어 테슬라를 제대로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헤드라인을 올리기 시작했다. 과연 현대차는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서 고성능 충전소 연합에 뛰어든 것일까?
결론만 놓고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현대차가 테슬라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이유를 알아봐야 한다. 북미 충전 표준(NACS: North American Charging System)제 주목해야 한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충전 포트 규격이 생겼다. 전기차를 충전한 적이 있다면 봤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위치한 충전소엔 일반적으로 DC콤보, AC 3상, DC 차데모 3종류의 충전 커넥터가 마련돼 있다. 이렇게 여러 충전 규격이 혼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국가나 이에 준하는 기관이 표준이 되는 하나의 충전 포트를 규정한다. 그러면 해당 국가에서 팔리는 차량은 표준 충전 포트에 맞춰 차를 생산하거나 개조해야 한다. 그래야 해당 국가의 충전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 한국에선 DC콤보 형태의 CCS1이 표준 규격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산 전기차와 수입 전기차 대부분에 DC콤보 형태의 충전 포트가 장착돼 있다. 문제는 테슬라가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그 어떤 제조사와도 겹치지 않는 독자적인 충전 포트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슈퍼차저’라는 충전 인프라까지 구축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021년 타사 전기차도 충전할 수 있도록 슈퍼차저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테슬라는 지난해 11월 보도자료를 통해 슈퍼차저 충전 커넥터의 이름을 NACS라고 명명한다. 북미 충전 표준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자사 시스템에 붙인 것이다. 미국은 ‘국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특별법(NEVI)’을 제정하고 전기차 인프라 투자에 약 9조6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테슬라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슈퍼차저를 경쟁 전기차들도 충전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했다. 테슬라는 이에 따라 슈퍼차저에 NACS 커넥터가 아닌 CCS1 커넥터를 장착하는 ‘매직독’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테슬라는 NACS 명명과 함께 충전 커넥터의 설계 특허를 공개했는데, 이후 포드, GM, 리비안, 볼보, 메르세데스 벤츠, 최근에는 닛산까지 미국에 판매하는 전기차에는 테슬라의 NACS 충전 포트를 장착하기로 협의했다.
슈퍼차저에도 CCS1 커넥터가 달리는데 이들은 왜 NACS 방식을 채택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개체가 많기 때문이다. 북미 내 테슬라 전기차 충전소 점유율은 60%이며, 미국 시장 점유율 역시 50%를 초과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한 회사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시간이 들었지만 현재 미국이 표준으로 사용하는 CCS1보다 슈퍼차저의 설치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다. 미국 내에 이렇게 많이 설치돼 있는 슈퍼차저이기에 NACS 방식을 탑재하면 무임 승차에 가까운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우월한 사용자 편의성이다. 실제로 NACS를 사용해보면 CCS1에 비해 훨씬 작고 가벼워 충전이 용이하다. 얇은 충전선에 대한 과전압 우려가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소비자에게는 상당한 이점으로 다가온다.
북미 시장에서 압도적인 전기차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테슬라는 물론 미국의 빅2인 포드와 GM까지 NACS 커넥터를 사용하기로 하자 사람들은 현대차에 주목했다. 지난 1분기 기준 현대차는 테슬라와 GM에 이어 미국 전기차 점유율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위해 NACS 방식을 채택할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현대차는 그간 내부 논의 중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다 충전 연합 결성을 발표한 것이다. 몇몇 언론은 이에 대해 현대차가 NACS에 맞불을 놓아 충전 연합을 결성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이번 충전 동맹에는 NACS를 채택하기로 한 GM과 메르세데스 벤츠가 참여했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NACS 획일화를 막고 CCS1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맞불을 놨다면 이들과는 같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이들이 만든 합작 투자 회사의 충전기는 CCS1은 물론 NACS까지 충전을 지원할 예정이다. 그렇기에 현대가 NACS 방식을 무조건 부정하기 위해 이런 연합의 구성원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 부분 테슬라 견제는 가능하다. 바로 데이터다. 전기차의 충전 포트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220V 콘센트와는 많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충전기와 차량이 통신을 해야 한다. 차량의 배터리에 충전량이 얼마인지, 이에 따른 충전기 전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등 차량과 충전기가 양방향으로 통신을 해야 한다. 슈퍼차저에는 별도의 디스플레이가 없는데, 이런 통신을 통해 차량 내부에서 결제까지 진행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테슬라만 독점으로 사용하던 NACS를 타 제조사에서 사용할 경우, 테슬라는 충전 최적화를 위해 타사 전기차의 여러가지 데이터를 요구할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이 참여한 전기차 동맹은 북미에 3만여 개의 충전 지점을 설치할 예정인데, 이 정도 규모에 NACS 충전기까지 설치할 경우 역으로 테슬라에 데이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즉 힘의 균형이 이뤄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차가 전기차 충전 동맹에 뛰어든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현대차는 유럽 최대 전기차 초고속 충전업체인 아이오니티의 지분 20%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유럽에서는 현대 전기차를 살 경우 충전과 관련한 프로모션을 활발히 진행하기도 한다. 아이오니티 연합에는 벤츠와 BMW, 포르쉐, 포드가 참여하고 있다. 북미 시장 충전 연합과 겹치는 멤버들이 눈에 띈다. 게다가 미국에서 특별법을 통해 거금의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으니 충전 인프라 확충에 딱 적합한 시기였을 수 있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NACS가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선 미국자동차기술협회(SAE)가 NACS를 표준화할 계획이다. 그럴 만한 게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체 전기차 중 테슬라의 비율이 50%가 넘는다. 포드와 GM까지 NACS를 채택하면 전기차 판매량 5순위 중 2개 브랜드를 제외한 3개 브랜드가 NACS 방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2017~2022년 미국에 판매된 전기차는 약 214만대다. 이중 테슬라 점유율을 80%로 본다고 해도 CCS1을 사용할 20%의 전기차 대수는 43만여 대다. 아직 CCS1 충전기의 필요성이 높기에 단시간 내에 사라질 일은 없다. 시대에 발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차분하게 살펴본 후 전환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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